러닝가이드

악천우 속에 치러진 ‘2016 이그나이트 서울’의 뒷마무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주최 측은 50% 환불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공식 블로그에 신청 페이지를 열었고, 일부 참가자들은 100% 환불을 받겠다며 다음 아고라에 청원 페이지를 열었다. 50% 환불 신청자는 몇 명이나 될지, 100% 환불 청원 서명자는 목표인 200명을 다 채울지(5월 24일 현재 70명)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일부 참가자들의 분노가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마라톤 주관을 대행하는 ‘기획사’들은 이번 이그나이트 사태를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두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일선에서 들려오는 얘기는 ‘이렇게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올 줄 몰랐다’ ‘일반 러너들과 생각들이 다른 것 같다’ ‘주최사에 거의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 정도로 간추릴 수 있었다. 이그나이트 주최 측의 환불 결정으로 인해 부담스러운 선례를 남겼다는 반응도 조심스레 나왔다.

기획사들의 눈에 비친 것처럼 이그나이트 참가자들의 반응은 여느 대회 참가자들의 그것과 사뭇 다른 데가 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그나이트 참가자들 중에서도 대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른 두 그룹을 발견할 수 있다.

‘러닝 대회 참가자’와 ‘러닝 콘텐츠 구매자’
가혹한 우중주 계기로 경계선 드러났을 뿐

예컨대 러닝가이드가 5월 19일자로 게시한 ‘욕먹을 만했던 이그나이트, 그러나 이해하기 힘든 환불사태’ 제하의 기사를 두고 대형 온라인 러닝 클럽 게시판에선 대체로 동의한다는 댓글이 주를 이뤘다. 러닝 클럽 활동과 대회 참가가 잦아 보이는 SNS 유저들도 대체로 비슷한 반응이었다. 반면 대회 공식 블로그에서 주최 측을 성토하는 이들은 브랜드 주최 대회 위주로 참가해왔고, 러닝을 꾸준히 즐기지 않거나 러닝 경력이 짧은 경우가 많아보였다.

이는 물론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는 주장을 펼칠 의도는 없으므로 일단 넘어가주기 바란다. 중요한 것은 크게 두 그룹으로 갈리는 참가자들의 성향 바로 그것이니까.

한쪽 부류의 참가자들에게 이그나이트는 러닝 경기였다. 이들은 ‘러닝 대회 참가권’을 샀고 출전 선수로서 행동했다. 다른 부류의 참가자들에게 이그나이트는 참여형 러닝 콘텐츠였다. 이들은 콘텐츠 이용권을 구매했고 구매자로서 행동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스스로를 규정하는 잣대가 전혀 다르다. 이렇게 본다면 양쪽의 반응이 다 이해할 만하다. 비닐우의와 은박시트에 만족하는 사람들, 그리고 분통을 터뜨리며 환불을 재촉하는 사람들 모두 말이다.

영 러너 시장 매력적이지만 리스크도 커…
어떤 컨셉의 대회든 기본기 놓치지 말아야

이그나이트 같은 ‘영 러너 대회’가 국내에 등장한 것은 2008년의 일이다. 나이키의 10km 단일종목 대회 ‘휴먼레이스’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러닝시장의 비주류로 여겨졌던 2030세대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다른 스포츠 브랜드들도 이미 선호하는 브랜드가 분명한 기성 러너 대신 이제 막 러닝에 눈뜬 젊은 세대를 공략하는 쪽에 매력을 느꼈다. 전통적인 스타일의 대회를 개최하던 아디다스와 이랜드에 인수된 후 마케팅 규모를 늘린 뉴발란스가 영 러너 대회에 뛰어들었고, 푸마‧스케처스‧아식스 등도 비슷한 성격의 대회를 개최하거나 참여했다.

이처럼 브랜드가 주도하는 영 러너 대회 참가자들은 경기력에 관련된 요구사항 내지 불만사항이 적고, 기꺼이 주최 측이 지정한 유니폼을 맞춰 입어 주며, 레이스 전 부스행사나 레이스 후 애프터파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었다. 때문에 스포츠 브랜드와 마라톤 기획사에게 영 러너는 기성 러너들에 비해 훨씬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이그나이트는 이 시장이 매력적인 만큼 리스크도 크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 시장 안에는 기상조건에 따른 불가항력적인 상황도 불가항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참가자들이 포함돼 있다. 대회 주최사들은 앞으로 이들의 요구에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까?

결국 해법은 기본기가 아닐까 싶다. 펀런이든 이색 대회든 로드레이스가 갖춰야 할 기본기를 놓치지 않는 것, 그리고 참가자들에게도 로드레이서의 기본기를 정중히 요청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영 러너 대회 주최사들은 자신들이 대회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참가자가 지켜야 할 안전수칙, 대회 준비물, 경기의 룰, 레이스 준비요령 등을 충분히 알려야 한다. 지나치게 감성적인 마케팅으로 인하여 충동적인 참가자들을 양산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도 있다. 그런 기본기들을 지킨 다음엔 대회가 정한 룰과 원칙을 단호하게 적용하는 뚝심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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