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가이드

1950년대 한국 마라톤의 간판스타였던 임종우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육상인들 사이에서는 꽤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선수다. 당대에 보기 드물게 스피드와 지구력을 겸비한 주자였으며, 피치주법을 능숙하게 구사한 최초의 한국선수로 꼽히기도 한다. 타고난 재능에 성실함까지 갖춰 한 시대를 풍미했고 무엇보다도 손기정 선생 이후 무려 22년 만에 한국기록을 경신해 한국 마라톤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손기정 선생 후원 받으며 ‘포스트 손기정’ 꿈꾸다

임종우는 1933년 9월 22일 충남 논산군 노선면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경기도로 올라가 국민학교를 다녔고, 한영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달리기와 연을 맺었다. 그 계기는 1학년 때 참가한 도내 체육대회 단축마라톤이었는데, 이 대회에서 일반부 선수들과 경쟁해 2위를 차지하면서 육상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중학교 졸업 후 육상 명문 양정중고등학교에 스카웃된 임종우는 3학년 때 교내 단축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워낙 쟁쟁한 실력자들이 모여 있는 학교인지라 교내대회라 하더라도 경쟁은 대단히 치열했다. 때문에 임종우는 우승을 계기로 큰 자신감을 얻게 됐고 마라톤 선수로 우뚝 서겠다는 꿈도 갖게 됐다. 이후 본격적인 트레이닝을 시작하여 5개월 뒤 열린 전국규모의 단축마라톤대회에서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다. 이로 인해 그는 일약 장거리 육상의 샛별로 떠올랐다.

일단 실력이 입증되자 한국 마라톤의 대부 손기정 선생이 그를 후원해주었다. 양정고등학교 엄경섭 교장, 이병권 선생, 한상우 선생 등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다. 그 덕분에 임종우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하드트레이닝을 소화하며 실력을 빠르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착실하게 실력을 쌓은 그는 신흥대학교(현 경희대)에 진학하면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54년과 1955년에 동아마라톤을 2연패(당시까지 최초)했고, 1955년 부산전국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전국체전에서도 1955년과 56년 연속으로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이 대학시절 성적을 통해 그는 명실공이 국내 톱 마라토너로 자리를 잡았다.

국내무대 평정하고 보스턴행… 22년만의 한국기록

국내무대를 사실상 평정하고 그는 더 큰 무대로 통하는 문을 두드렸다.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인 보스턴마라톤 파견선수 선발전에 참가한 것이다. 1956년 11월에 진행된 선발전에서 그는 당당히 1위를 차지해 이듬해 열리는 제16회 대회의 출전자격을 획득했다. 당시 한국 마라톤은 1950년 한국선수 3인반(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의 보스턴마라톤 1~3위 석권 이후 한 명의 입상자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송길윤에게 거는 육상계와 대중의 기대는 대단히 컸다.

1957년 4월 꿈의 무대 보스턴마라톤 출발선에 선 임종우는 전매특허인 피치주법으로 세계의 쟁쟁한 건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렸다. 함께 참가한 한승철(5위)과 최충식(피로 누적으로 기권)을 제치고 선두그룹에서 경쟁을 벌인 그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미국의 존켈리(2:20:05), 핀란드의 베이코 카르보넨(2:23:54)에 이어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그가 작성한 기록 2시간 24분 59초는 1935년 손기정 선수가 작성한 한국기록(2:25:14)을 무려 22년만에 경신한 것이었다. 당시 현역 마라토너들에게 거대한 벽처럼 여겨졌던 전설의 기록을 임종우가 뛰어넘음으로써 이후 한국기록의 경신 주기는 1~2년 저도로 짧아졌다.

한국기록을 작성한 이듬해인 1958년 홍콩에서 열린 30000m 대회에서 임종우는 또 한 번 쾌거를 이뤘다. 400m 트랙을 70바퀴 반이나 돌아야 하는 극한의 레이스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보스턴 우승이 결코 행운이 아니었으며, 정신적으로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주자임을 입증한 귀한 성과였다.

올림픽 출전의 꿈 이루지 못한 채 후진 양성의 길로

보스턴마라톤 입상과 한국기록 작성을 동시에 거머쥔 임종우에게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무대는 호락호락 열리지 않았다. 1958년 열린 도쿄아시안게임에서는 컨디션 난조와 35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 국내 선수끼리의 과도한 경쟁, 페이스 조절 실패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저조한 기록으로 비틀거리며 골인해 4위를 차지했다. 30km 이후 그를 추월해 우승을 차지한 이창훈도 골인점에서 실신 직전이었다.

올림픽 출전의 꿈은 그가 선수시절 내내 간절히 원했던 것이었지만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력이야 늘 최고였지만 대표선수 선발전에선 번번이 운이 따르지 않았다. 결국 그는 도쿄아시안게임 이듬해인 1959년 전국체전을 끝으로 현역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경기에서도 그는 준우승을 차지하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은퇴 후에는 경기도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학생들을 지도했으며 1980년에는 도쿄여자마라톤 파견선수단 코치를 맡기도 했다. 경기도육상연맹 부회장을 맡아 육상 발전에 힘쓰기도 했다. 그가 육상 지도자와 행정가로서 받은 상이 무려 30여개에 이를 정도이니 육상계 안에서 인정받는 건실한 일꾼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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