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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대회참가후기
제 목 [가을의전설] 약간의 죽음을 경험하며
작성자  김영민 - 2013-11-05 오후 5:43:34 

올 해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을 뛰신 2만여명의 마라토너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40대중반이 되면서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고, 지속적으로 달리고자하는 마음에
마라톤을 선택해서 2013년4월에 처음으로 10km를 뛰고, 제 한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근데 이게.. 이것이 마라톤의 매력이구나, 뛸 수록 빠져들게 되고, 이제 이것이 나의 취미!!
이제는 이것 뿐!! 나는 이제 마라톤을 사랑합니다.

몇 번의 단축마라톤과 두번의 하프마라톤을 거쳤으나, 아직도 부족한 사람인데..
덜컥. 춘천마라톤을 신청하게 되고, 중요시기에, 연습을 못하게 됩니다.

먼 거리에서 춘천까지 가자니, 전날 출발하여 근처 찜질방에서 하루를 해결하게 되었어요.
찜질방에 많은 마라토너들이 모이고, 이 좁은 찜질방에 이리 많은 사람이 잘 수도 있구나.
덕분에 남자구경? 은 실컷 했지요. 나쁜사람~~

아침일찍 초코파이 2개 먹고, 공지천을 향했습니다.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
계획대로라면 30km 정도 무난히 뛰고, 이후로는 천천히라도 뛰어 4시간30분이 목표였지요.

출발후에 20km까지는 무난했고, 예상대로의 6.5km/hr 수준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20km지난 시점에, 발바닥에 붙인 스포츠테이프가 안좋은 역할을 한건지
발바닥이 땡겨오면서 뛰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덩달아 고관절까지 아파왔습니다.

너무 아파와서 포기를 할까 생각을 하자니, 지내왔던 여러가지 상황들이 파노라마같이
스쳐 지나가면서 왠지 모르겠지만 마구 슬퍼지기 시작하는 분한 분위기. 자기 성찰.
여기서 포기한다면 앞으로 더 어려운 일들도 못 이기리라. 가족들한테 나는 무엇일까?
기어서라도 갈거야.

이를 악물고 뛰었지만. 감정은 감정이고 현실은 레알일뿐. 몸은 이미 저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고, 불과 몇분 지나지 않아 이미 몸에 있는 모든 에너지들은 빠져나갔고.
거기다가 후발주자이라 그런지 급수대에 있는 공급품들은 이미 스쳐간 선배들이 사용한
시체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 에너지겔이나 스프레이파스나 구경을 못했어요 )

아직도 몇km 마다의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생생합니다.

23km을 지나 25km 까지 가는 길의 배추밭과 오르막 아스팔트길.
25km을 지나 27km 까지 가는 길의 대단히 큰 다리.
27km를 지나 29km 까지 가는 길의 춘천댐.
29km를 지나 32km를 지나는 끝이없는 내리막,
32km를 지나 34km를 지나는 기억나지않는 무던한길들과과 그 가운데 102보충대.

35km를 지나는 시점에서 약간의 힘을 다 해서 뛰려는 순간, 핑 도는 느낌에 털썩 주저않아
1분여를 멍하니 있었지요. 이렇게 쓰러지는 거구나. 이제 버스에 실리는 구나. 이제 끝이구나.
어차피 끝날거며는 여기서 쓰러져버렸으면 좋겠다. 이렇게 좋은 핑계는 없겠지.

하지만 그 때, 그 순간을 지나 일어나는 순간 이상하게 몸이 안아파지면서
고관절과 발바닥이 갑자기 회복이 되었고 조금씩 뛸 수 있게 되었어요. 뇌가 이상해진건가?

조금씩 뛰면서, 앞서 무거운 걸음으로 달려가시는 분께.. "힘드시죠" 라고 말을 걸었는데
잘 못 들으셨는지, "지금이 30분이니까 앞으로 4km 남았는데 시간은 40분밖에 안남았어요"
라는 동문서답. 근데 그 소리 듣는 순간, 또 다른 힘이 다시 나를 감싸고.
마지막 나만의 다짐이라고.. 마지막 1km는 꼭 뛰어서 완주하리라. 절대 그러리.
하지만 탐욕스러운 아스팔트와 햇빛은 벌써 나의 마지막 에너지를 핥으려 합니다.

한참을 지나니, 이제는 가능하겠다. 느낌이들고, 소양강처녀동상을 지나고 점점 완주에
대한 확신이 들어집니다. 나머지 1km 팻말을 보고 나만의 최면을 걸어 뜁니다.
200m는 막내아들을 위해, 200m는 둘째딸을 위해, 200m는 첫째딸을 위해. 200m는 아내를 위해.
왜그렇게 긴지도 모르겠는 알수없는 몇백m는 나를 위해.

골인대가 보이면서, 앞에 가고 계시던 20여명의 마라토너들을 순식간에 지나 마지막 피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거의 초주검이 되어 골인을 하는 순간.
나를 춘천마라톤을 이끌었으면서 야속했지만 고마운 선배의 얼굴이 골인지점에 보였고,
그 품에 안겼다. 이제 됐다. 이제는 됐다. 그리고 형용할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났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 중에 육체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경험이었고,
자토백의 말처럼 약간의 죽음을 경험했던것 같았습니다만 성취감도 최고였습니다.

이제 마라톤이 끝난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제가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누구도 저에게 관심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라톤을 완주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바뀌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도 바뀌지 않았지만
나는 바뀌었다고.

오늘, 또 다시.. 없는 시간을 만들어 뛰기 시작합니다.

나 아직 여기 살아있다! 여기 아직 살아서 뛰고 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춘천마라톤을 마련해주신 조선일보분들과 춘천시,
그리고 관련분들, 특히 급수대에 있는 봉사자분들(특히 열정적이었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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