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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대회참가후기
제 목 11년 11월 6일 중앙마라톤 후기..
작성자  이성수 - 2011-11-22 오후 3:49:30 

나는 행복한 나르시스트!

따사로운 기운이 대지를 덮고 있던 어느 봄날에,

샤워하고 나오는 남편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집사람이 감탄사를 내뿜는다.

“당신은 얼굴 가리고 포르노 배우 대역해도 되겠어!”

3년여,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꾸준히 운동을 해온 자신으로서는

겉으로는 “이 사람이!” 하면서도 속으로는 쾌재를 아니 부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몸을 멋지게 가꾸었고,

매일매일 자신을 감상하는 맛에 또 열심히 운동에 목숨(?)을 걸고 있다.

 

업무과다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위장장애,

6개월 동안 위내시경만 세 번을 해야 했던 암에 대한 공포,

종국에는 40대 우울증의 긴 터널을 헤쳐 나오게 한 것은 운동이었다.

혈압도 정상수치를 웃돌고,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뻐근하게 굳어오는 것을 느끼며

더 이상 ‘위장약에 의존하는 삶은 살수 없다’는 절박함이 나를 운동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수북이 쌓인 위장약을 쓰레기통에 쳐 넣어 버리고 신정산 배수지로 올라가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단 몇 백 미터도 뛰지 못해 처음에는 걷기부터 시작한 운동, 턱걸이 3개, 윗몸일으키기 서른 개, 팔굽혀펴기 단 몇 개....

3년여의 세월 속에 나는 디테일한 근육을 바라보는 낙으로 삶을 사는 스포츠 매니아가 되어 버렸다.

말 그대로 자기 몸의 아름다움에 빠져 물속으로 들어간 나르키소스를 따르는 나르시스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달팽이 걸음보다 더 느린 속도로 운동량을 늘리고,

시간을 늘린 결과 턱걸이 스무 개, 팔굽혀펴기 서른 개는 거뜬히 할 정도의 근력이 생기고,

드디어 달리기는 풀코스를 소화할 만큼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한 것이다.

 

마라톤은 정말 ‘노탱큐’였다.

‘될성부른 나무’라고 본 ‘계남마라톤클럽’분들의 집요하고도 기나긴 제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부상의 위험도 있고,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큰 마라톤은 하지 않겠다.

오로지 생활체육을 즐기는 것이 나의 운동관이다.’

 

 

마라톤에 눈을뜨다.

나의 ‘굳은 심지’를 무너뜨린 건 양천조기b의 영웅 여자마라토너였다.

이메일로 받아 본 춘천마라톤과 동아마라톤 후기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고,

마라톤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과 공포심을 떨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그것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고, 인간승리의 찬가였다.

겨우 8킬로 근처에서 고정되어 있던 달리는 거리가 배로 늘고,

심지어는 305m트랙을 약70바퀴 돌아야 하는 하프를 밥 먹듯이 뛰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은 혼자서 140바퀴를 뛰어 보자는 마음으로 트랙을 돈 적도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달리고 또 달렸다.

‘숫자를 아주 천천히 세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돌고 돌았다.

96바퀴째 급격한 체력의 고갈을 느끼며 아쉽게도 100바퀴에서 멈춰버리긴 했지만.... 30.5킬로.

그런데 아뿔사! 준비해간 물을 마시는 순간,

머리는 어지럽고, 다리는 풀리면서 지탱할 힘조차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아 한참을 쉬어야 했다.

탈수증! 나중에서야 그 무섭다는 탈수증현상이 왔던 것을 알게 되었다.

달리면서 처음 겪는 ‘공포스러운’ 경험이었지만,

그 속에서 ‘물과 에너지원’만 주어진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달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결정적으로 나의 마라톤 본능을 자극한 것은 홍은택씨가 지은 ‘아메리카자전거여행’이라는 책이었다.

대단한 의지력과 자전거 여행을 통한 세상과의 소통을 보여준 그 책을 보면서

나는 마라톤에 대해 철학적으로 정리하게 되었다.

세상과 자신이 소통하는 매개창구로서 나는 마라톤을 선택했고,

그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는 과정을 밟고 또 타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아니 그럴 때만이 내게 있어 마라톤은 그 의미가 살아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42킬로를 달리는 무모한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2011년 5월 21일(토) 새벽 5시 40분 출발, 아침 9시 45분에 종료..

7.1킬로 거리 3회 왕복, 42킬로 완주!

30.5킬로를 달리면서 퍼졌던 경험이 약이 되어 주었다.

물과 에너지원만 공급된다면 충분히 완주도 가능하리라는....

 

 

부상이라는 복병

정말이지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무모하게 돌진하였다.

42킬로를 뛰고도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심지어 주중에 하프를 두 번씩이나 뛰기까지 했으니...

결국 나의 몸도 무쇠가 아니라는 것을 부상이 증거 해 주었다.

최종적으로 오른쪽 발바닥의 근막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것이다.

드디어 ‘마라톤의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순간 부상은 좌절감과 함께 찾아든 것이다.

비록 부상상황에서도 뛰기를 멈추지 않고 ‘새벽마라톤’ 하프코스까지 출전하긴 했지만,

몸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은 결과 곧장 그 반대편 ‘종아리 근육파열’이라는 치명상을 입는 것으로 벌을 받고야 말았다.

종아리 근육 파열을 스스로는 ‘오른쪽 발바닥 부상회복을 위한 왼쪽 다리의 희생’으로 규정짓기는 했지만,

‘끊고 맺음’의 미학, ‘쉼’의 미학을 훈육 받는 과정이었다.

부상을 통해 나는 겸손함을 배웠다.

자기 몸을 사랑해 줄 사람은 바로 나 자신밖에 없다는 유치한 생각을 하기 조차했다.

‘과유불급’은 앞으로 펼쳐질 마라톤 여정에서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게 될 것이 틀림없다.

‘아라뱃길 마라톤’ 32킬로 완주를 통해 ‘부상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마라톤에 있어서는 ‘초심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다시 한번 족저근막에 심각한 부상이 찾아들었다.

아라뱃길 후 4일정도 충분히 쉬었다고 판단하고 성급하게 하프거리를 달린 게 화근이었다.

결국 중앙마라톤 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 할 상황에까지 다다르고야 만 것이다.

중앙마라톤을 3주 남긴 마당에 정형외과 의사는 2주 동안은 무조건 달리기를 중단하고

투약과 물리치료를 병행하라며 아주 기계적인 처방을 내린다.

마라톤 멘토 민수마미에게 10월 17일 새벽 “손으로 발바닥을 누르면 괜찮은 듯한데,

뛰면 아프니 분명 달리기는 중단해야 할 듯합니다.

1주일 정도 쉬어보고 그래도 안 풀리면 쿨하게 중마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겐 마라톤 보다 더 중요한 게 일상적으로 운동하는 즐거움이랍니다.”라는 문자를 날리기 까지 했다.

그러나 중마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

달리기 대신 회사 건물 계단 오르내리기 운동으로 위안을 삼고,

아프지 않는 선에서 조깅을 하면서 발바닥의 추이를 예민하게 살펴 보았다.

지극정성으로 맛사지를 하고, 끊임없이 자기암시를 보냈다. 발바닥에게로...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극적으로 통증은 잦아들고, 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신중한 관찰 속에서 305m 트랙 일흔 바퀴를 뛰어 보고,

또 일요 달림이에서 방화철교까지 소화하고서야 중마를 향한 최종점검을 마칠 수 있었다.

 

 

식이요법에 도전하다.

중마를 한주 앞둔 월요일 저녁 퇴근길에 멘토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식이 요법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

단백질 중심의 식사를 통해 몸속의 탄수화물을 고갈시킨 후,

더 많은 탄수화물을 체내에 축적하기 위한 목적인데,

후반전에 닥칠지도 모르는 에너지 고갈을 극복할 수 있는 대단히 위력적인 것이 식이요법이라면서...

일상적 달리기의 연속선상에서 ‘마라톤’을 바라보고 있던 자신에게 멘토의 제안은 선뜻 내키지가 않았지만,

‘국제마라톤에 출전하면서 식이요법조차 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얘기까지 꺼내는 마당에 마땅히 거부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결국 일곱끼니를 오로지 닭가슴살, 계란 흰자, 쇠고기와 돼지고기 육질 그리고 생두부만으로 때웠다.

브로컬리 한조각이라도 입에 넣을라치면 옆에서 강력하게 저지하고 나서는 집사람 덕에

거의 완벽하게 식이요법을 수행하였다.

수요일 새벽 계측한 체중은 57.7킬로그램. 평소체중보다 3.5킬로그램이 빠져있었다.

축늘어진 목살을 본 집사람 왈, “늘어진 닭벼슬같다”고 할 정도로 피골이 상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목금토...멘토가 보내준 찰떡부터 시작해서 빵, 과일, 밥 할 것 없이 아귀처럼 끝없이 구겨 넣었다.

첫날은 2킬로, 둘째 셋째 날엔 1킬로그램씩 4킬로가 다시 부풀어 올랐다.

조금은 단조로운 식사패턴에 힘들긴 했지만,

‘밥 먹듯이’ 단식을 해 봤던 자신으로서는 견딜만한 식이요법이었다.

평소 잘 안 먹던 고기 ‘실컷 먹어나 보자’는 심정되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결국 멘토의 제안으로 이뤄진 식이요법은

레이스 막판 체력의 유지와 피니쉬라인을 앞 둔 폭발적 스퍼트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자신이 손수 조리하여 수행한 식이요법 식단..

첫날은 저만큼의 양으로 아침 점심까지 먹는 바람에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는...

 

 

자신의 페이스 설정하기

사실 혼자서 풀코스도 뛰어보고 퍼져도 보고 별짓 다해 봤지만

부상으로 잃어버린 달리기 리듬에 더해,

공식 마라톤대회의 첫 풀코스 도전이 주는 중압감은 자신의 페이스 설정하기에 상당한 혼돈을 초래하였다.

아라뱃길 32킬로때는 LSD훈련을 통해 나름대로 페이스에 대한 판단을 일찍 내렸던 반면

이번 중마에서는 대회 바로 전날 40분 달리기를 하면서 최종결정할 정도로 갈팡질팡했다.

무엇보다 계남마라톤 클럽의 신입이 춘천마라톤에서 3시간 30분 기록으로 완주했다는 소식이 제일 충격적이었다.

첫 출전인데 써브포만 해도 대단한 일 아닌가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 사람도 했다는데 나라고 못할 쏘냐 하는 오기가 생기기도 하고...

그렇지만, 막상 훈련 량도 턱없이 모자라고 자신의 페이스에 대한 자신감도 없는 마당에

세시간 반이나 아니면 극단의 사투를 전제한 기록도전은 포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결국 대외적으로는 써브포, 대내적으로는 3시간 50분을 목표로 중마에 임하게 된 것이다.

막상 느슨한 목표를 잡고 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킬로당 5분 25초에서 30초를 겨냥한 나의 달리기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흔한 손목시계조차 차지 않은 채 나는 나의 길을 달렸다.

 

 

화장실 청소로 대회 워밍업을 대신하며

조금 부족한 훈련 량 탓에 불안해 하면서도 그에 맞는 페이스 설정을 끝낸 때문인지

대회전날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연합군과 독일군의 제2차 세계대전 속에서 꽃피우는 휴먼스토리가 엮어지는 기분 좋은 꿈을 꾼 후

집사람한테 ‘영화시나리오 쓰겠다’며 잠꼬대 같은 얘기를 늘어 놓기도 했다.

어찌나 흐뭇한 꿈이었던지!

새벽 네시에 일어나 정성껏 종아리와 대퇴부 근육마사지를 하며 사랑스러운 대화를 나누었다.

‘주인은 너희들을 사랑한다. 비록 이번에 너희들을 혹사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잘 참아주기 바란다.

욕심은 내지 않을 테니 나를 믿어라...

비록 중간에 쥐가 나고 퍼진다 하더라도 그건 너희들 탓이 아니다.

나는 그것조차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니 너희들도 편안하게 임하거라’

전날 일부러 약국에 들러 사온 ‘맨소래담’로션을 지극한 정성으로 발라주며 나눈 몸과의 대화였다.

그리고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루었던 아이들 화장실 청소로

온몸 스트레칭을 대신할 요량으로 덤벼 들었다.

일체의 잡념은 잊은 채로 구석구석 윤기 나게 닦노라니 종국에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미쳤나 보다’싶을 정도였다.

풀코스 도전하는 날에 화장실 청소라.....

결국 시간에 쫓겨 단잠에 빠져있는 집사람을 깨워 양천구청역으로 급히 향했다는....

 

 

1982년 11월 6일, 청계천 삼일로 고가차도 밑에서

우렁찬 ‘독재타도’의 함성이 삼일고가차로를 찌렁 찌렁 울리고 있었다.

자신으로서는 처음 참가 해 보는 가두시위! 그 엄혹했던 시절,

종로와 청계천을 해방구 삼아 스크럼을 짠 학생들의 기세는 대단했다.

날은 어두워졌지만, 우리들은 지칠 줄 모르고 거리를 질주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백골단이 시위대의 후미로 급습하는 것이 아닌가.

미쳐 도망치지 못한 여자 선배는 백골단에 잡히고

그 옆에서 울부짖으며 여자 친구를 구하려고 악을 쓰던 선배 형도 같이 연행되고야 말았다.

출발선을 지나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 가슴 속 저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뜻 모를 눈물로 주루룩 흘러 내렸다. 그리고 떠오른 영상이 있었다.

1982년 11월 6일 청계천 광장에서 울부짖던 두 선배의 처절했던 모습!

눈물을 흘리면서도 왜 갑자기 그날의 기억이 홀연히 떠올랐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이 나의 감정선을 그토록 건드렸을까?

돌아가신 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이 설핏 스쳤지만, 여전히 뇌리에는 그날의 기억이 선연히 되살아났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29년전 그날도 11월 6일이었다는 우연을 발견했지만,

극한의 도전에 나서는 순간 가슴 저 밑바닥 언저리에 숨어 있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가 그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닌가 싶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격정적으로 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를 수가 있었다.

아니 그 순간을 충분히 즐겼다.

그저 이유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괜히 뭉클해지는 가슴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천호동 사거리를 굽어들면서도 또 길동 사거리를 굽이 도는 순간에도 똑같은 경험은 반복되었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가운데

그냥 눈물이 저 먼저 알고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이상하고도 신비롭고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달리기는..

나름대로 설정한 페이스대로 꾸준히 달린 덕분인지,

아니면 무수한 건각들이 무리져 달려서 그런지 육체적 고통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소위 25킬로 마의 벽이니, 35킬로 제2의 위기니 하는 것은 특별히 느끼지 못했다.

가끔씩 나타나는 오르막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페이스를 조금 늦추는 것으로 충분히 돌파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루함’과의 싸움이었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그 막막함!

종아리와 대퇴부 근육의 피로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페이스를 급격히 올리지만 않는다면 별반 문제될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이 오로지 집중하고 통제한 것은 ‘호흡’ 그 자체였다.

시계도 페메도 없이,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해 준 것은 일정한 ‘호흡 리듬’이었다.

‘하하후후’ 네박자 호흡법은 즐겁고 행복한 레이스를 담보한 일등공신이라 할 만했다.

‘펀런의 의미는 뭘까?‘ 도 생각해 보았다.

진정한 펀런은 충분한 훈련이 전제 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달리기 경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이 즐길 수 있는 그 무엇!

충분한 에너지, 탄탄한 근육, 그리고 넘치는 훈련량이 삼위일체가 될 때

비로소 펀런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 나는 것이 아닐까.

거기다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태도‘가 더해지면 금상첨화일 터이다.

느슨한 레이스가 펀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몰입하는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펀런은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달렸다.

자신의 레이스를 돌아보면 전략적 측면에서도 또 전술적 측면에서도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자신의 훈련량과 체력상태를 면밀히 계산한 속에서 목표시간을 설정하고,

레이스 전중후반에 걸친 체력안배, 그리고 막판 스퍼트에 에 대한 작전도 완벽하게 소화하였다.

다만 2% 부족했던 것은 목숨 걸고 뛰고자 하는 자세의 부족, 결기의 부족이 아니었을까.

즐거움에 겨워 쏟아지는 빗방울을 혀로 핥아 먹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일부러 물웅덩이로 들어가 힘차게 물왕관을 만들어 내면서 달리기도 했다.

엘리트선수 중 선두로 달리는 마라토너를 향해서 힘찬 함성으로 응원을 보내기도 하고,

끈을 묶고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감동을 먹어 파이팅을 외쳐 주기도 했다.

가끔은 희열을 참지 못해 단말마와 같은 괴성을 쏟아내기도 했다.

달리는 순간 순간 즐거움이 묻어났다.

허파와 다리는 고통속에 신음할 지언정, 달리고 있는 자신이 그렇게 고맙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단백질 식사로 완전히 그로기 상태가 된 가운데

처음부터 허기와 배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 달렸던

11월 2일 수요일 양천공원에서의 10바퀴 7.4킬로의 연습주가 떠올랐다.

35킬로 지점을 지나면서 그날의 고통을 떠올려 보았다.

그에 비하면 몸도 마음도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3시간 50분 페메를 앞지른 마지막 언덕구간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달렸다.

 

 

잊을 수 없는 막판 스퍼트의 짜릿함!

40킬로 지점을 지나면서 살짜기 갈등을 해야 했다.

조금 더 페이스를 올릴 것인가 아니면 막판 스퍼트의 짜릿함을 극적으로 맞이할 것인가?

당연히 막판 스퍼트만이 나에게 남겨진 마지막 과제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찰나의 시간도 필요치 않았다.

결국 더 ‘빨리 뛰어 볼까’ 하는 유혹을 참아내며 거대한 함선처럼 떡 버티고 선 잠실 운동장 문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웅장한 콜로세움 원형경기장을 질주하는 로마의 근육질 전사였다.

나는 한 마리 야생마였다. 내 등엔 관운장이 타고 있었다.

육중한 대전교도소 먹방!

젊은 청춘이 포승에 앞발 뒷다리가 한꺼번에 뒤로 묶여 개밥을 먹고 있다.

불러도 불러도 아무도 와주지 않는 절해고도와 같은 먹방!

할 수 있는 거라곤 식기에 코를 쳐 박고 혀를 내밀어 먹는 일 밖에 없었던 그곳...

그곳에 내가 있었다. 나는 그를 보았다.

그렇게 결승점은 내 앞에 나타났고, 나는 환희의 나락으로 포승줄을 풀어 버렸다.

격한 울음이 뒤이어 터져 나왔다. 사나이의 뜨거운 포효!

참지 않았다. 나는 바로 이 순간이 인생의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되리라는 기대에 전율했다.

새로운 삶이 펼쳐질 거라는 희망이 울음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먼저 골인점을 뚫어낸 마라톤 멘토,

나의 작은 영웅과 힘찬 포옹을 하고 함께 뜨거운 눈물을 토해냈다.

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 행복의 눈물....

 

 

에필로그

지금 나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눈만 뜨면 온통 마라톤의 도가니에 흠뻑 빠져든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레이스를 펼치면서

‘마라톤은 이번 한번만으로 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에

더더욱 레이스의 짜릿함을 오래도록 즐기고 싶다.

또 다른 도전을 위한 터닦기라고나 할까.

 

나는 달리고 또 달릴 것이다.

즐거움과 행복, 고통과 아픔이 녹아 있는 마라톤이 나는 좋다.

세상과 소통하고 나를 확인하는 소중한 창구, 내게 있어 그것은 달리기다.

 

비록 자화자찬의 늪에 빠져 있지만,

자신은 이제 갓 풀코스에 도전한 ‘애숭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마라톤을 알아버렸다’고 자만에 떤 자신이 가소롭게 느껴진다.

자신조차 잊고 있었던

마음 속 깊은 곳의 상처를 끄집어 낼 정도의 괴력을 지닌 것이 마라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숙연한 마음’으로 ‘자만의 꼬리’를 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있어 마라톤은 숭고한 그 무엇으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나는 한낱 마라톤 신자에 불과할 뿐이다. 행복한 얼치기 마라톤 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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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기자  ilsan*** 2011-11-22 답글답글
 

한편의 서사시 같은 감동적인 스토리가 전개 되는 참가기 잘 보았습니다, 우여곡절과 고난이 많은 삶을 살아 오신듯 합니다, 중마의 좋은 기록으로 무사완주 하심을 추카 추카 드립니다, 마라토너로써 앞으로도 값지고 멋진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힘!! ^^*


kina*** 2011-11-23 답글답글
 

축하와 격려 감사합니다. 태식님의 댓글에 감동해서 또 이슬이 맺히는 건 제가 지나치게 감성적이기 때문이겠지요.


2011-11-23 답글답글
 

긴글 읽으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한편의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읽는것 같은 감동이었습니다.


kina*** 2011-11-30 답글답글
 

감사합니다. 지나치게 늘어져서 지루했을 법한데..


ljs6*** 2011-11-25 답글답글
 

이성수님 좋은 감동의 글을 읽고 있는동안 나도 모르게 잠실 주경기장의 결승라인을 보면서 뛰어 들어오는 느낌 입니다.그리고 체격이 저와 비슷한점이 많습니다.저도 마라톤은 아니라고 했는데 3년째 접어 드는군요. 건강하게 오랫토록 즐런 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kina*** 2011-11-30 답글답글
 

저도 그날의 감동을 오랫동안 되새김질하며 즐거운 나날 보내고 있답니다. 푹쉬어 주면서 봄날의 신화에 도전해 보려구요.


dlakstj*** 2011-11-28 답글답글
 

마라톤의 인생사인지 인생의 어느일부분이 마라톤인지 모를 정도로 푹빠져 읽었습니다.
마라톤의 내공이 인생의 한부분을 찾이하는 그날까지 열심히 달리시기 바랍니다.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kina*** 2011-11-30 답글답글
 

첫풀코스 도전에 완주여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밋밋해지겠지요.
그렇지만 달리기의 즐거움 만큼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jin4*** 2011-12-02 답글답글
 

잘 읽었습니다. 한 편의 드라마네요. 부럽습니다. 홧팅입니다. 짝짝짝


kina*** 2011-12-03 답글답글
 

감사합니다. 이제 막 입문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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